이번 달 한겨레신문 칼럼은 시리아의 민간구조대 ‘화이트 헬멧’을 후원하자고 말하고 싶어서 썼다. 위에 링크한 동영상부터 보기를 권하고 싶다. ‘화이트 헬멧’ 대원들이 3층짜리 건물이 무너진 곳에서 생후 2주된 아기를 구해내는 장면이다. 여러 번 봤는데도 볼 때마다 울컥해진다. 지금 일하는 단체에 들어온 뒤 시리아 전쟁 중단, 한국정부의 난민 지원 확대를 촉구하는 서명운동, 광화문 촛불 캠페인 등등 해마다 시리아 내전 시작일인 3월15일이 되면 뭔가를 하면서 꼼지락거렸다. 근데 올해는 곧 나올 보고서 홍보를 제외하곤 다른 걸 하지 않을 참이다. 긴 전쟁에 지쳤다거나, 달라진 게 없어서 힘 빠졌다거나 하는 건방진 이유 때문은 아니다. 그냥 정말 모르겠다. 해결책은 뭔지, 저 먼 땅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에..
#1. 나이지리아 북서부의 시골 마을. 갓 엄마가 된 라일라는 딸 라비아를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 한다. 그러나 라일라가 아무리 노력한들 딸 라비아는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잔인한 질문이지만, 라비아가 태어난 지역의 영유아 사망률이 출생아 1천 명당 150명으로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높은 현실이 더욱 잔인하다. 라비아가 이 시골마을 대신 최대도시 라고스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더라면 다섯 살까지 생존할 확률이 4배 가까이 올라간다. 아이가 다섯 살 생일을 맞을 기회는 태어난 곳, 부모가 속한 계층 등 아이들에겐 순전히 우연인 변수에 좌우된다. 출생의 복불복이라고 해야 하나. #2. 시선을 같은 대륙의 동남쪽으로 옮겨 역시 가난한 나라인 르완다로 가보자. 부레라 지역 농부의 아내 모데스테..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격언을 새삼 다시 떠올린 것은 조만간 벌어질 어린이놀이터 무더기 폐쇄를 앞두고서다. 27일부터 전국 어린이놀이터 중 안전관리를 위한 설치검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았거나 검사를 받지 않은 곳 3천396개 (지난해 12월말 기준, 국가안전처)가 폐쇄된다. 이들 중 85%는 주택단지 안의 놀이터다. 주택단지 안의 놀이터 중 94%는 아예 검사를 받지 않았다. 보도에 따르면 대다수가 영세 주택단지라고 한다.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관리법이 제정된 2008년 이전에 지어진 놀이터들은 불합격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이용에 큰 불편이 없어도 개선공사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공사비용이 만만치 않아 주민들이 검사를 받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럼 앞으로는 ..
우리는 한때 아이였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나, 읽는 여러분이나 모두. 그래서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요. 어렸을 때 어떤 일을 겪었건 어린 시절은 곧잘 미화되기 마련이어서, 즐거울 때 우리는 곧잘 ‘동심으로 돌아간다’고 말하곤 합니다. 슬프거나 힘들 땐 쓰지 않는 말이 동심, 즉 아이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의 마음은 과연 어떨까요? TV 예능프로그램에 등장해서 인기가 높은 아이들의 깜찍하고 귀여운 말들이 요즘 아이들의 마음을 대표하고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현실 속의 한국 아이들은 요즘 스스로 불행하다고 말합니다. 2014년 11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아동종합실태조사에서 한국 아이들의 삶의 만족도는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꼴찌였습니다. 한국 아이들의 ‘삶의 만족도’는 100점..
20일은 유엔아동권리협약 제정 25주년이 되는 날이다. 내가 속한 단체의 이름을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지금의 일을 하기 전엔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잘 몰랐다. 이름이야 들어봤지만 무슨 내용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지한 사람이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실현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단체에서 일해보기로 결심한 이유는 이 일이 작은 변화를 만들 수 있으면서 정치적 이념과 무관한 보편적 가치를 다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관련된 일에 무슨 정치가 있겠는가. 정치적 이념과 갈등으로 갈가리 찢긴 업계에 오래 몸담고 있다가 빠져나온 나로서는 솔깃한 일이었다. 그런 기대가 매우 순진했다는 것을 오래 지나지 않아 알게 됐다. ‘아이에게 무슨 권리가 있느냐’고 바라보는 사회에서 아동권리와 관련된 이슈..
최근 경찰청이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인용해 신생아를 버리는 영아 유기가 이틀에 한 명 꼴로 벌어지고 영아 유기 피의자들 중엔 어린 미혼모가 많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런 유형의 보도에 으레 그렇듯 인명경시풍조와 무분별한 성적 방종에 대한 개탄도 뒤따랐다. 그러나 정말로 그럴까? 어린 미혼모들의 생명에 대한 책임의식이 그토록 희박한가? 젖먹이를 버리는 비정한 엄마를 비난하기 이전에 아이를 버리는 ‘주범’은 과연 누구인지 따져봐야 한다. 우선 시야를 넓혀서 보면 아동 유기는 줄어드는 추세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버려지는 아이인 기아(棄兒)는 1990년엔 1천844명, 2000년엔 1천270명이었다가 2010년엔 191명으로 줄었다. 그 뒤 다시 증가하여 지난해엔 285명이 버려졌지만 이는 아이를 안전하..
내가 일하는 구호개발단체의 영국 본부는 1주일에 한 번씩 전 세계 스태프들에게 단체가 일하는 인도적 지원 현장의 최근 소식을 보내준다. 처음엔 재해와 분쟁으로 인한 재난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기가 질렸다. 단체에서 일한 4년 간 본부가 인도적 지원 활동가를 파견한 지역이 50곳 이하로 떨어진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라이베리아에서 홍수가 난 네팔에 이르기까지 71곳의 재난 현장에서 활동가들이 일하고 있다. 고작 한 단체가 일하는 재난 현장이 이럴진대 전체는 오죽할까. 재난 이후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곧잘 듣는데 그 말은 틀렸다. 규모와 세기, 벌어진 일과 벌어질 일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이미 재난은 일상이다. 인도적 지원 현장 소식에는 재난 자체보다 덜 중..
이런 질문에 답해보자. 지적 장애가 있는 열한 살 아들을 곧잘 때리던 아버지가 계속 강제로 아들의 성기를 만졌다. 이건 애정표현인가, 성폭력인가? 이런 질문도 생각해보자. 가출을 일삼던 열네 살 딸을 설득하던 아버지가 목검으로 딸을 때렸다. 이건 훈육인가, 학대인가? 최근 아동학대와 성폭력에 대한 법원의 잇따른 판결을 보면서 통념에 은폐된 폭력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들의 성기를 만져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으로 기소된 아버지에게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의 나이, 성별,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 행위, 장소의 공개성, 현재 우리 사회의 성적 도덕관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아들에 대한 애정의 표시로 보일 뿐”이란 이유에서다. 이 사건은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가 아버지의 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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