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 외상사건의 피해자가 겪는 수치심과 의심을 설명하면서) 수치심은 무력감, 신체적 안녕의 침해,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모욕에 대한 반응이다......외상 사건은 주도성에 훼방을 놓고, 개인의 능력을 제압한다....외상이 끝난 뒤 생존자들이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고 비판하게 되면서 나타나는 죄책감과 열등감은 실제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외상 사건의 후유증이다.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다.... (생존자가 스스로를 비난하는 사례를 설명하면서) 유사한 문제는 강간 생존자들의 치료에서도 표면화된다. 이들은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렸다거나,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다면서 쓰디쓰게 자책한다. 그러나 이는 정확히 피해자를 비난하고 강간을 정당화하려는 강간범의 논박과 일치하는 것이다. 생존자는 자신이..
정신없는 와중이지만 기록해두고 싶다. 10일 레너드 코헨이 세상을 떴다. 향년 82세. 14년 전, 코헨의 노래를 거의 매일 듣던 시기가 있었다. 이혼 직전 무렵. 회복해보려 애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던 관계의 위기를 피해 밤봇짐 싸 달아나는 사람 마냥 우연한 미국 연수 기회를 덜커덕 붙잡아 LA에 갔더랬다. 얼떨결에 1년짜리 MBA 과정을 다니게 되었는데 수업이 그렇게 빡빡한 줄 모르고 갔다가 거의 매일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사는 생활을 해야 했던 시간. 그래도 어쨌거나 LA 아닌가. 10분이면 해변에 갈 수 있고 사시사철 화사한 곳. 그럭저럭 즐겁게 지냈지만...우울한 날들이 더 많았다. (당시엔 그 뒤에 더 많은 나쁜 일들이 생길 줄 몰랐던 때라) 인생이 바닥을 쳤다고 생각했고, 비뚤..
최근 북유럽의 한 도시에 갔을 때의 일이다. 번잡한 광장의 한 구석에서 특이한 모양의 목조 건물을 발견했다. ‘침묵의 예배당’이라고 한다. 대화와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바깥의 소음에서 뚝 떨어져 고요히 자기 안으로 침잠하기를 권유하는 공간. 반가운 마음에 긴 의자에 앉아 침묵의 세계로 가라앉기를 기다렸지만 바람은 금세 무너졌다. 자리에 앉기는커녕 계속 움직이며 스마트폰으로 몰래몰래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때문이었다. 실망스러웠지만 그들만 탓할 일도 아니지 싶었다. 어디를 가든, 멋진 풍경과 작품, 맛을 경험하기 전에 촬영부터 하는 게 많은 사람들의 습관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렇게 카메라부터 들이대는 자신을 변호라도 하듯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남는 건 사진뿐이잖아.” ‘침묵의 예배당’에서 스스로 침묵..
살아있는 동안 꼭 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 (bucket list) 중 하나는 내 ‘명예의 전당’에 모셔둔 몇몇 작가들의 전작(全作)을 다 읽는 일이다. 그 중의 한 명이 로맹 가리. 오래 전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으로 처음 만났고 자서전적 소설인 『새벽의 약속』에 매혹된 뒤 그의 소설들을 계속 찾아 읽는 중이다. 이번에 읽은 소설은 공쿠르상을 탄 『하늘의 뿌리』였다. 로맹 가리만큼 세상사의 아이러니, 사람의 표변과 이중성, 이념과 믿음의 무가치함을 예리하게 간파하고 때론 냉소 또는 혐오를 드러내면서도 결국 사람에 대한 대책 없는 애정을 버리지 못하는 작가도 찾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그가 그려낸 사람들은 나치 강제수용소에 갇혀 모든 것을 빼앗길지언정, 하다못해 땅바닥에서 뒤..
아침에 신문에서 본 시인 김소연의 이 글이 너무 좋아서, 자주자주 보려고 링크 걸어놓는다. 시행착오일 게 뻔한 인생이라 이 글에서 위로를 얻는 건가....아무튼 적어도 "새로운 시행착오, 겪어본 적 없는 낭패감", 그리고 시인의 말마따나 비루함과 지루함, 낭패감, 드물게 찾아오는 지극함 등이 골고루 섞인 경험은 열심히 겪고 있으니! "어쩌면 인생 전체가 이런 시행착오로만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싶다. 죽는 날까지 경험할 필요 없는 일들만을 경험하며 살다가 인생 자체를 낭비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을지라도, 커다란 후회는 안 해야겠다 생각한다. 수많은 인생 중에 시행착오뿐인 인생도 있을 테고, 하필 그게 내 인생일 뿐이었다고 여길 수 있었으면 한다. 대신, 같은 실수가 아닌 다른 실수, 같은 시행착오가 아닌..
- Total
- Today
- Yesterday
- 산티아고
- 인생전환
- 글쓰기 생각쓰기
- 김현경
- 알라딘 TTB
- 사랑
- 블로그
- 김진숙
- 인터넷 안식일
- SNS
- 단식
- 스티브 잡스
- 중년의터닝포인트
- 서경식
- 1인분
- 김인배
- 영화
- 터닝포인트
- 세이브더칠드런
- 책
- 엘 시스테마
- 차별
- 조지프 캠벨
- 인류학
- 페루
- 다문화
- 중년
- 제주올레
- 여행
- 몽테뉴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