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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벽 속의 요정 을 만나다

sanna 2006. 7. 9. 23:37

블로그 용으로 처음 쓰는 글. -.-;

만들어놓고 잠깐 잊어버릴 만큼 정신이 없었다. 생활도, 마음도….

버트런트 러셀이 ‘행복의 정복’에서 말했다. ‘너 행복하니?’하고 자꾸 묻는 사람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 자기를 들여다보는 짓도 자꾸 하면 나쁜 버릇 된다고.^^


토요일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김성녀의 모노드라마 ‘벽 속의 요정’을 보다.

이전에 윤석화가 하는 모노드라마도 본 적이 있다. 그땐 윤석화가 보여주는 여러 얼굴의 변신이 재미있었지만, 그 모든 변신체들 속에서도 일관되게 자기를 주장하는 ‘윤석화’가 두드러져서 구경하는 느낌이 강했다.


‘벽 속의 요정’에서 김성녀는, 정말 최고다.

혼자서 오가며 어머니와 아버지 딸의 역할을 연기하는데 배우 김성녀 대신 어머니 그대로, 아버지 그대로, 딸 그대로의 감정을 전달해준다. 다른 생각을 할 틈 없이, 거리를 둘 여지도 없이 자신에게로 관객을 확 끌어들인다. 연극을 보면서 그렇게 울어보기도 처음이다.


‘벽 속의 요정’은 원래 스페인 내전 때 있었던 실화를 소재로 일본 작가가 쓴 극본을 한국적 상황에 맞게 번안한 것이다. 해방 후 좌우익 이념 대립 속에서 벽 속으로 피신하게 된 남자, 그를 돌보는 아내, 아버지인 벽 속의 남자를 요정으로 믿고 자라는 딸.


무대의 변화도 없이 집안이라는 한 공간 안에서 김성녀가 바삐 오가지만, 그녀는 결코 분주하지 않다. 주로 어머니의 입장이 되어 서글픈 옛이야기를 구수하게 들려주던 김성녀가 아버지의 입장으로 바뀌어 “참세상이 오리라 믿고 모든 걸 바쳤는데 지금 이 세상은 무엇인가”하고 미친 듯이 노래 부르며 피울음섞인 웃음을 터뜨릴 때, 또 곱게 자란 딸의 입장으로 어느새 변신해 웨딩드레스를 입고 식장으로 가다 돌아와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아버지에게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여줄 때,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세상과 자신을 원망하던 아버지가 벽 속에서 산 세월은 40년. 얼마나 여러 번 자신을 죽였겠는가. 하지만 그 세월 후 자신이 밤마다 짠 모시드레스를 입은 딸의 모습을 보았을 때, 김성녀가  아름답게 노래했던 것처럼, 아버지도 생각하지 않았을까. ‘살아있다는 건 아름다운 것’이라고.

돌아오는 내내 그 대사가 잊혀지지 않았다. 살아있다는 건 아름다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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