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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민주화” vs “저작권 침해”



정보 민주화인가, 지식 생태계 파괴인가. 포털 사이트의 도서본문 검색 서비스 강화 움직임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와 출판인회의는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이달 말 시행하려던 도서본문 검색 서비스 강화 계획을 유보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11일 밝혔다. 출협 등은 8월 중 교보문고와 손잡고 이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인 다음에도 같은 요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출판계가 도서본문 검색 서비스를 문제 삼는 것은 최근 교보문고와 네이버가 이 서비스를 위해 각 출판사와 ‘전송권 이용 계약’을 하면서부터다.

출협이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자 현재 출판사별 계약 체결은 중단된 상태다.

▽공짜 독서? 아니면 발견의 수단?=출협 김인호 이사는 “도서본문 검색 서비스는 책을 ‘발견’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이지 공짜 독서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현재의 도서본문 검색 서비스는 발견의 수준을 넘어섰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을 침해할 정도의 수위에 이르렀다는 게 출협의 주장이다.

네이버가 출판사에 제시한 ‘전송권 이용 계약’에 명시된 검색 범위는 검색어 전후 3쪽, 전체 책 분량의 1% 이내다. 네이버의 공연수 책서비스팀장은 “검색 가능한 총량을 책 본문의 30% 이내로 제한했다”고 설명했다. 보통 책이 300쪽 안팎이므로 약 90쪽을 도서본문 검색 서비스로 볼 수 있는 셈이다. 공 팀장은 “미국 검색사이트 구글이 보여 주는 도서본문 분량보다 훨씬 적다”고 말했다.

그러나 포털 사이트의 도서본문 검색 서비스가 쟁점화한 것은 책 4만여 권을 대상으로 한 검색을 통해 낱권을 뛰어넘는 거대한 데이터베이스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원생인 진혜진(23·여·경영학) 씨는 “경영학과의 특성상 과제를 하려면 사례를 많이 찾아야 하는데 도서본문 검색 서비스가 아주 유용하다”고 말했다. 이 서비스가 책 홍보마케팅의 수단을 뛰어넘어 심층적 정보를 포괄한 데이터베이스로 기능하고 있는 사례다.

도서본문 검색 서비스가 책 판매에 도움이 되는지도 논쟁거리다.

현재 네이버의 도서본문 검색 서비스 이용자는 하루 약 20만 명으로 전체 검색 서비스 하루 이용자(850만 명)의 2.4%다. 공 팀장은 도서본문 검색 서비스로 지난해 책 판매율이 50%가량 상승했다고 밝혔다.

반면 한 대형출판사 주간은 “나온 지 오래된 책을 재발견한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신간 판매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보의 해체 vs 정보의 서사성=도서본문 검색 서비스를 둘러싼 논쟁은 ‘지식의 마지막 보고’인 책의 미래와도 관련이 있다.

김 이사는 “정보 유통업체가 지식의 생산과정을 도외시한 채 책에 수록된 정보의 해체를 통해 책의 서사성을 무시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것은 지식 생태계를 파괴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다음의 최성진 검색전략팀장은 “포털 사이트 검색이 이미 젊은층에 정보 취득의 주요 수단이 된 상황에서 책의 노출 자체가 뒤져 있는 것은 출판계에도 손해”라며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서점에서 책을 들춰 보듯 본문 보기를 하는 것은 책의 유통 범위를 넓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미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논란이 있었다. 5월 중순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검색사이트 구글이 하버드대 등 5개 대학의 도서관 소장 도서를 디지털 북으로 만드는 흐름을 소개하며 ‘책 해체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든 책 속의 말들이 링크(link)와 태그(tag)를 이용해 서로 인용되고 뒤섞이게 되면 구글의 거대한 데이터베이스 자체가 집단 지능으로 기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대해 미국 소설가 존 업다이크 씨는 6월 말 같은 신문에 반론을 게재하고 “그 같은 책 해체는 지식 이전의 사회로 되돌아가자는 발상이고 작가를 대리모로 만들어 버릴 것”이라고 비난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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