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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손이 쓰는 것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일단 글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펜을 쥐고 글을 써 나가다 보면 쓰는 행위 자체가 쓰는 이의 두뇌와 감성을 자극해 새로운 사고와 상상력의 세계를 열어 준다는 것이다.
일본 작가 사이토 다카시는 말하는 것을 걷기에, 글쓰기를 달리기에 비유한 적이 있다. 거리를 조금씩 늘려 가며 훈련하면 누구나 1km는 거뜬히 달릴 수 있듯 글쓰기도 마찬가지라는 것.
글쓰기에도 비기(秘技)가 있을까. 국내 논픽션 분야 베스트 셀러 저자들에게 물어봤다. 체험기가 모두 베스트셀러가 된 한비야 씨, 교양과학 분야 최고 판매 도서 기록을 세운 정재승 씨, 역사 분야의 대중 저술가인 이덕일 씨가 자신만의 글쓰기 방식을 들려줬다.》
○ 쉽고 편안한 말글-‘한비야 체’ 글쓰기
1996년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이후 지난해 말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 이르기까지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이 펴낸 책 7권은 모두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책들은 한결같이 술술 읽히는 쉬운 말글로 쓰였다. 오죽하면 한 고교 국어교사가 신문 사설을 학생들에게 나눠 주고 ‘이 글을 한비야 체로 고치라’는 수업까지 했을까.
그러나 글이 쉽다고 해서 글을 쓰는 과정도 쉽게 이뤄지리라 생각하면 착각이다. 그의 책 세 권을 낸 푸른숲 출판사 김혜경 사장은 한 씨에 대해 “느낌표 하나까지 굉장히 엄격한 완벽주의자”라고 평했다.
한 씨는 글을 쓸 땐 늘 밤을 새운다. 밤새 원고지 100장을 넘게 쓴 뒤 아침에 마음에 들지 않아 5장만 남기고 모두 버린 적도 있다. “머리를 벽에 100번 찧어 좋은 글 한 줄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글쓰기를 대하는 그의 기본 태도다.
그는 매일 쓰는 일기와 메모로 글쓰기의 기본을 닦았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긴급구호 현장에서도 빼먹지 않은 일기를 토대로 썼다. 디지털카메라를 갖고 다니는 사람이 첫 번째 목련을 보면 저절로 카메라에 손이 가듯 그는 저절로 메모장에 손이 간다고 한다.
글을 멋지게 쓰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글을 잘 쓰려면 미사여구, 유식한 단어를 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 책엔 초등학생이 모르는 단어가 한 개도 없다. 그렇게 쉬운 단어로도 얼마든지 책을 쓸 수 있다.”
다 쓴 글은 꼭 소리 내어 읽어 본다. “글은 노래이자 이야기이자 호흡이다. 나와 독자가 호흡이 맞으려면 소리 내서 읽을 때 껄끄러운 표현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조다.
그에게 ‘일필휘지’란 없다.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뒤 교정지가 나올 때마다 빨간 펜으로 하도 많이 고쳐 ‘딸기밭’이라고 부를 정도다. 원고가 인쇄소로 넘어가기 직전에도 밤중에 달려가 고치고 책이 나온 뒤 2쇄, 3쇄를 찍을 때도 계속 고친다.
한 씨는 해마다 ‘1년에 100권 읽기’를 하는데 긴급구호로 오랫동안 외국에 나가 있지 않으면 대부분 초과 달성하는 편이라고 한다. 그는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들이 ‘진부하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조언 하나를 들려줬다.
“진심을 갖고 써라. 제발 단 한번만이라도 나에게 가슴 뛰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라. 그리고 그것을 글로 써라.”
○ 전방위적 호기심과 독서-정재승 식 글쓰기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가 쓴 ‘정재승의 과학콘서트’는 2001년에 출간된 뒤 지금까지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교양과학 도서다. 이 책을 펴낸 동아시아출판사 한성봉 사장은 정 씨에 대해 “전방위적 호사가”라고 평했다. 다방면에 걸친 지식과 호기심이 그의 글이 지닌 가장 큰 강점이라는 평가다.
한 달에 40∼50권을 훑어보고 10권가량은 꼼꼼히 읽는 정 씨는 “좋은 글을 쓰려면 독서가 필수”라고 생각한다.
“독자가 쉽게 이해하도록 글을 쓰려면 적절한 예제, 딱 맞는 비유, 핵심을 꿰뚫는 인용 등 세 요소가 중요하다. 좋은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이 세 요소 없이 생각을 추상적으로 전개하거나 중언부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세 요소는 다른 사람의 글을 충분히 읽지 않으면 도저히 구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칠 때 문단 단위로 연습하기를 권한다. 문단은 생각의 단위이고 한 문단에 하나의 생각을 담아야 하는데 한 문단에서 여러 이야기를 하거나 한 이야기도 끝마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 문단을 잘 구성하기만 하면 연결고리를 통해 다른 문단과 이어가고 글쓰기를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글쓰기 전 밑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중요하다.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곧바로 글을 쓰다가 처음 의도와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시작은 어떻게 하고, 각 문단은 어떤 내용을 담을지 밑그림을 먼저 잡고 글을 쓰면 더 잘 써진다.”
한번 글을 쓰면 반드시 20번쯤 읽는다. “산문에도 운율이 있으므로 독자가 한번에 이해하도록 쓰려면 필자가 아주 작은 운율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의 공통점은 ‘남의 글을 충분히 읽지 않고 글 쓰는 연습을 많이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 시각과 문제의식의 단련-이덕일의 글쓰기
어마어마한 생산량인데도 이 씨는 “쓰는 행위 자체가 큰일은 아니다. 글쓰기에서 글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제의식을 다듬어 주제를 구상하고 자료를 분석하며 생각을 숙성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책 3권을 펴낸 출판사 김영사의 백지선 팀장은 ‘도발적 문제의식’을 그의 글이 지닌 강점 중 하나로 꼽았다. 역사가가 보는 자료라는 게 새로울 것이 없는데도 다양한 자료의 비교분석을 통해 새로운 진실을 발견해 내는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
글 쓸 주제를 고를 때 이 씨는 “내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독자도 알고 싶어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고른다”고 했다. 그는 글을 잘 쓰려면 개방적 세계관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변화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변화를 수용해야 새로운 문제의식이 생기며 문제의식을 갖고 보면 같은 자료에서도 계속 새로운 게 보인다.”
치열한 문제의식을 글로 옮기려면 문장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 씨는 “문장력을 기르는 방법은 많이 보고 많이 써 보는 것 말고 왕도가 없다”고 했다.
“요즘 논술 준비 광고를 보면 논술 공부가 문장 공부인 것처럼 광고하는데 문장은 자기 생각을 펼치는 도구에 불과하다. 더 중요한 것은 글에 담긴 생각, 논리다.”
책을 그렇게 많이 썼지만 여전히 1000장짜리 책을 쓸 때 원고지 200∼300장을 버리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아무리 많이 해도 더 수월해지지 않는 일이 글쓰기인 까닭이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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