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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재/밑줄긋기

참척의 고통

sanna 2008. 8. 22. 01:17
" '인생은 풀과 같은 것. 들에 핀 꽃처럼 한번 피었다가도 스치는 바람결에도 이내 사라져, 그 있던 자리조차 알 수 없는 것'('시편' 15~16)
주여. 그렇게 하찮은 존재에다 왜 이렇게 진한 사랑을 불어넣으셨습니까. "

- 박완서의 '한말씀만 하소서' 중에서-

은평구 나이트클럽의 불을 끄다 숨진 변재우 소방관의 어머니 이야기 를 읽다가 왈칵 눈물을 쏟았다.
변 소방관의 어머니는 지난해 남편을 잃고 몇달 지나지 않아 변 소방관보다 다섯살 터울 아래인 딸을 심장마비로 잃었다. 이제 하나 남은 혈육인 아들까지 잃어버린 이 어머니는 위암을 앓고 있다.
아무리 세상의 행,불행이 고르게 배분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렇지, 어쩌자고 이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고통을 몰아주는가... 절대자가 있다면 삿대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다.

고통의 크기를 비교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자식을 앞세운 참척의 고통보다 더 큰 아픔이 있을까...
변 소방관의 어머니 이야기를 읽으면서,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이 외아들을 잃고난 뒤에 썼던 책 '한 말씀만 하소서'가 생각 났다.

박완서 선생님이 아들을 잃었던 때도 올림픽이 열리던 해였다.
밤새워 한국선수들을 응원하는 외손주들을 보면서, 유난히 잘 싸웠던 한국선수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으면서 '세상은 이제 너희들의 것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선생은 "내 아들이 없는데도 축제가 있고 환호와 열광이 있는 이 세상과 어찌 화해할 수 있을 것인가" 괴로워한다.
...그럴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훤히 웃던 아들이 갑자기 사라졌는데 왜 해는 다시 떠오르고 날은 맑기만 한지, 왜 사람들은 웃고 세상은 아무 일이 없다는 듯 굴러가는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박완서 선생이 오랜 사투를 거쳐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왜 하필 내 아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묻는 집요한 질문과 원한을 "내 아들이라고 해서 데려가지 말란 법이 있나"로 고쳐 마음 먹으려 애쓴 필사적인 노력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그것도 오랜 시간이 지난 연후에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니,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어느 누구에게 말하기 어려울 때에도, 참척을 겪은 어미의 마음 속 은밀한 구석엔 '왜'냐는 질문이 가시처럼 박혀있을는지도 모른다.  
...답이 없다. 당장 자식을 잃은 어미를 위로할 힘을 가진 말이란 세상에 하나도 없다. 불가능하다...변 소방관의 어머니 곁에 나중에 미음이라도 쑤어와 떠먹여줄 사람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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