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무솔리니, 프랑코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담배를 싫어했던 반면, 연합국 측의 처칠, 스탈린, 루스벨트가 대단한 애연가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채식주의자이기도 했던 히틀러는 건강에 대한 애착이 대단해, “담배는 적색인종이 백인에게 건 주술이며, 백인이 알코올을 전해준 것에 대한 복수”라고 말하며 금연 운동에 열을 올렸다. (……) 홀로코스트와 건강지향은 ‘나치 우생학’이라는 같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 인간을 건강한 병력 또는 노동력으로, 여성은 출산력으로만 평가하는 냉철한 실용주의 노선을 관통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체장애자의 말살이나 열성 유전자 보유자의 단종,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의 전면 배제’에 쉽게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독일의 암 연구는 건강입국을 목표로 삼은 정권..
…아버지가 계시는 천안 공원묘지 입구에는 아주 커다란 바윗돌에 ‘나 그대 믿고 떠나리’라고 쓰여 있습니다. 누가 한 말인지 어디서 나온 인용인지도 알 수 없이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커다란 검정색 붓글씨체로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중략…)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곳의 삶을 마무리하고 떠날 때 그들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못 다한 사랑을 해주리라는 믿음, 진실하고 용기 있는 삶을 살아 주리라는 믿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 주리라는 믿음, 우리도 그들의 뒤를 따를 때까지 이곳에서의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리라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에 걸맞게 살아가는 것은 아직 이곳에 남아 있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 故 장영희 교수의 중에서 -
조지프 캠벨의 '신화와 인생'을 읽다. 물방울을 통해 바다를 들여다볼 수 있어 나는 신화, 상징에 대한 이야기가 좋다. 지난해 할 일없이 혼자 놀 때,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세상을 보자' 마음 먹고 전작주의 독서 대상으로 삼았던 '거인' 중 한 명이 캠벨이었다. 물론 다 읽진 못했지만...-.-; 이 책은 캠벨이 직접 쓴 게 아니고 강연록을 바탕으로 그의 다른 책들을 편집해 펴낸 책이라, 기대했던 만큼 흥미롭진 않다. 구성도 어지럽고 짜집기 편집도 거슬린다. 캠벨과 신화, 상징의 해석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보다는 언론인 빌 모이어스가 캠벨과의 대담을 잘 정리해놓은 '신화의 힘' 이 입문서로 훨씬 낫다. 캠벨의 세계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거칠고 무슨 말인지 종종 알 수 없는 번역문장과 오역을 감수하고..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그렇게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말이다. 체실 비치에서 그는 큰 소리로 플로렌스를 부를 수도 있었고, 그녀의 뒤를 따라갈 수도 있었다. 그는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이제 그를 잃을 거라는 확신에 고통스러워하면서 그에게서 도망쳤을 때, 그때보다 더 그를 사랑한 적도, 아니 더 절망적으로 사랑한 적도 결코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그녀에게는 구원의 음성이었을 것이고, 그 소리에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을 거라는 사실을. 대신, 그는 냉정하고 고결한 침묵으로 일관하며 여름의 어스름 속에 선 채, 그녀가 허둥지둥 해변을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힘겹게 자갈밭을 헤쳐나가는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작은 파도들이 부서지는 소리..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
희망- 판도라는 재앙들로 가득찬 상자를 가져와서 열었다. 이것은 신들이 인간에게 준, 겉으로 보기에 아름답고 매력적인 선물이었고 '행복의 상자'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그때 상자에서는 날개를 단 살아있는 온갖 재앙이 튀어나왔다. 재앙들은 그때부터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밤낮으로 인간에게 해를 끼쳤다. 그러나 상자에서 단 하나의 재앙이 아직 빠져나오지 못하고 남아 있었다. 그때 판도라는 제우스의 뜻에 따라 뚜껑을 닫았고, 그래서 그 재앙은 상자 속에 남게 되었다. 인간은 영원히 행복의 상자를 집안에 두고 어떤 보물이 그 안에 들었는지 신기해 한다. 인간은 판도라가 가져온 상자가 재앙의 상자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남아있는 재앙이 행복의 최대 보물인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우스는 인간이 다른 심한 ..
“역사 이야기를 쓰고 있는 내 마음 속에는 어떤 가설이 점점 확실해져 가고 있다. 그것은 국가의 흥륭도 쇠퇴도 같은 요인의 결과라는 가설이다. 베네치아는 외부인을 거부하는 것으로 대업을 이루었다. 하지만 또한 이 방침을 관철함으로써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고대 로마도 마찬가지다. 이쪽은 반대로 문호를 열어 대국이 되었으나 쇠퇴도 같은 요인으로 일어났다. 국경을 넓혀 사람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줌으로써 대제국이 되었으나 그로 인해 수도 로마의 기능이 허해지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시오노 나나미 ‘다시 남자들에게’ 중에서 - (요네하라 마리 ‘마녀의 한 다스’ 에서 재인용) 국가의 흥망이 같은 이유 때문이라는 것... 사랑도 마찬가지 아닐까. 처음에 우리를 어떤 사람에게 끌리게 만드는 특성..
" '인생은 풀과 같은 것. 들에 핀 꽃처럼 한번 피었다가도 스치는 바람결에도 이내 사라져, 그 있던 자리조차 알 수 없는 것'('시편' 15~16) 주여. 그렇게 하찮은 존재에다 왜 이렇게 진한 사랑을 불어넣으셨습니까. " - 박완서의 '한말씀만 하소서' 중에서- 은평구 나이트클럽의 불을 끄다 숨진 변재우 소방관의 어머니 이야기 를 읽다가 왈칵 눈물을 쏟았다. 변 소방관의 어머니는 지난해 남편을 잃고 몇달 지나지 않아 변 소방관보다 다섯살 터울 아래인 딸을 심장마비로 잃었다. 이제 하나 남은 혈육인 아들까지 잃어버린 이 어머니는 위암을 앓고 있다. 아무리 세상의 행,불행이 고르게 배분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렇지, 어쩌자고 이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고통을 몰아주는가... 절대자가 있다면 삿대질이라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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