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네가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내가 물을 터이니, 알거든 대답하여라." 욥의 부르짖음에 대한 야훼의 답변은 이렇게 시작한다. 몇 년 전 욥기를 읽으며 놀랐던 건, 성당을 한참 다녔던 중학생 때의 어렴풋한 기억과 달리 단 한 번도 스스로가 죄인이라고 고백하지 않는 욥의 태도였다. 욥은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왜 내게 이런 짓을 하느냐고 야훼에게 따진다. 왜 이러는지 대답 좀 해보라고 끈질기게 묻는다. 왜 악한 자가 복을 누리고, 죄 없는 사람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죄 없는 한 사람이 치르는 끔찍한 고통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욥은 집요하게 묻고 따진다. 반면 그를 위로하러 온 친구들은 야훼 앞에 욥의 무릎을 꿇리려 애를 쓴다. 여섯 번에 걸쳐 욥에게 "무슨 이유가 있으니 이런 벌..
모처럼의 연휴에 심하게 앓았다. 꼼짝 못하고 드러누워 계속 비몽사몽. 정신이 혼곤한 와중에 잠깐씩 깰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트위터도 보고 책도 들췄는데, 사람들의 봄 나들이 자랑, 불타버린 대한문 앞 쌍차 분향소, 책 속의 아름답고 비통한 이미지들이 마구 뒤섞여 꿈속으로 몰려들어왔다. 깨어 있는 상태와 꿈 속이 분간이 안 될 지경.... 그렇게 읽은 책이 서경식의 '나의 서양음악순례'다. 내가 좀비 같은 상태여서 제대로 읽었는지나 의심스럽고, 클래식에 문외한이지만, 참 좋은 책 (이렇게 말하려니 좀 황당하긴 하다..). 의도한 건 아닌데 10여 년에 걸쳐 서경식의 '소년의 눈물', '나의 서양미술순례', '나의 서양음악순례'를 다 읽게 됐다. 세 권의 책을 늘어놓으면 섬세한 내면, 다소 우울한 감수성을 지..
착해지지 않아도 돼. 무릎으로 기어다니지 않아도 돼. 사막 건너 백 마일. 후회 따윈 없어. 몸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두면 돼.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테니. 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 그러면 태양과 비의 맑은 자갈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야. 대초원들과 깊은 숲들, 산들과 강들 너머까지. 그러면 기러기들, 맑고 푸른 공기 드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거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 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잖아. 꽥꽥거리며 달뜬 목소리로-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 그 한가운데라고. - 메리 올리버 '기러기' 요즘 자기 전에 매일 읽는 시. 야근하고 밤 늦게 기어 들어..
이 책은 원제 (Healing the Heart of Democracy)보다 번역제목과 부제 (비통한 자를 위한 정치학 - 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가 훨씬 좋다. 게다가 비통, 민주주의, 마음...대선 이후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키워드들이 아닌가. 대선 전에 한 번 읽은 책이지만, 대선 이후 마음이 요동칠 때 이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왜 그렇게 마음이 심란했을까. 평소에 별 관심 없던 정치가 왜 나의 일상적 감정에 그토록 큰 영향을 끼친 걸까. 개인적으로는 대선 다음날 내가 작은 사고를 쳤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선 결과로 뭐라 말할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오른 상태에서 회의에 갔다가, 나보다 연배가 한참 높은 분과 언쟁 끝에 그에게 아주 거칠게 대했다. 그 분 의견이 말도 안 되게 들려 열이..
"루스, 사람들은 계속 길이 열릴 것이라고만 말합니다. 나는 고요 속에 앉아서 기도도 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어요. 그래도 길은 열리지 않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나의 소명을 찾으려고 애써왔지만, 아직도 내게 정해진 길을 짐작조차 할 수 없어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길이 열릴지 모르지만, 내게는 그런 일이 절대 없을 거예요." 루스의 대답은 솔직했다. "나는 모태 신앙인이라네. 그리고 60년이 넘게 살아왔지. 그러나 내 앞에서 길이 열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네." 우울하게 말하던 그녀가 잠시 말을 멈추었을 때, 나는 절망으로 빠져들고 있었다....[중략]...잠시 후 그녀는 잔잔한 미소와 함께 말을 이어갔다. "반면에 내 뒤에서는 수많은 길이 닫히고 있었다네. 이 역시 삶이..
그러니 ‘그게 가닿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계속되는 말하기’에 해당하는 단어를 따로 만드는 게 좋겠다. 내가 국어학자는 아니지만, 여기에 해당하는 단어를 ‘숨말하다’라고 짓고 싶다. ‘숨말하다’는 ‘숨쉬다’처럼 모든 사람에게 일생동안 총량이 정해진 말하기를 뜻한다. 이건 소통이전의 생존 자체를 위한 말하기다 대부분의 숨말하기는 말하는 사람으로서는 말하지 않을 수 없어서 말하는 말하기다. 그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언어들. 하지만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그건 개인적인 말들이어서 듣는 사람은 설사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숨말하기는 혼잣말하기보다 훨씬 더 외롭다. 그건 어떤 심연 앞에서 말하기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게 심연이기 때문에 나는 이..
" 시간의 사용을 기록하게 한 결과,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실제로 시간을 사용하면서 기록한 내용이 일치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대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은 그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고 마음먹은 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늘 무의식적으로 그런 일들이 자기가 실제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과업들인 양 느끼고 있었을 뿐이다. 실제 기록에 따르면,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독촉자 노릇을 하는 데에 사용했다. 시간의 사용에 대해서는 기억보다는 기록을 신뢰해야 한다. " - 피터 드러커 '프로페셔널의 조건' 에서 - 시간 사용에 대해선 기억보다 기록을 신뢰해야 한다는 드러커의 말을 오늘 절감하다. 아이폰에 pomodoro 앱을 다운받아서 써보다가, 시간 사용..
올해 읽은 첫 책. 읽었다기 보다 '보았다'고 해야 하나. 거실과 부엌 침실 욕실 등 각 공간마다 책을 전시, 진열하는 법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탐나는 책꽂이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높은 책장, 책꽂이를 열면 나타나는 비밀의 방처럼, 당장 따라 해볼 형편은 안 되지만 '언젠가는 꼭' 이란 생각을 갖게 만드는 환상적인 책장들과 공간들. 서평을 써야지 했는데, 최근 시작한 번역 원고 때문에 종일 자판을 두드리다 보니 깜빡이는 커서만 보아도 멀미가 나려 한다. 재미있는 대목 하나 옮겨놓는 것으로 서평 대체. 서적광 로저 로젠블러트는 자신의 거실 책장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친구를 보면 불안해진다고 고백했다. "분위기가 절정에 이른 클럽에서 이 여자 저 여자를 훑어보듯 이 책 저 책 훑어보는 음흉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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