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 '이상한 정상가족' 개정증보판을 냈다. 기억하기도 좋게 2022년 2월22일에 나온 책. 꽤 손을 많이 댔지만 새 책이 아닌 개정증보판이라 뭔가를 세상에 내어놓는다는 마음이 덜했는데, 편집자가 채널24 '판권의 뒷면'에 쓴 글을 읽고 그제야 아, 맞다. 꼭 새 책을 내듯 그때 참 열심이었지 싶다. 눈이 빠지게 원고를 여러 번 들여다보며 의논하고 수정하고 덧붙였다. 초판으로 끝나는 책들이 부지기수인데 개정증보판을 낼만큼 독자들이 꾸준히 읽어주셔서 고맙고 두렵다. 편집자의 마음을 기억해두고 싶어서 그가 쓴 글의 일부를 블로그에 옮겨놓는다. " 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 질문 앞에 서면 절로 숙연해진다. 그럼에도 나는 『이상한 정상가족』이 이끈 변화를 보며 경이감과 함께 책임감을 느낀다. 이 책..
“이미 한차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16개월 입양아동이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으로 전국이 들끓던 이달 초순, 아동보호체계 진단을 위한 국회 긴급 간담회에서 국내입양인연대 민영창 대표가 했던 말이다. 전례 없이 입양이 전국적 관심사가 되어버린 이달 내내 한 살 때부터 입양인으로 살아온 민 대표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뭣이 중헌디’라는 한때의 유행어처럼, 입양이라는 복잡한 관계에서 누가, 왜 가장 중요한 사람인지를 잊지 말라는 일침처럼 들렸다. 불가피하게 친생부모가 키울 수 없게 된 아이에게 영구적 가족을 찾아주는 입양에서, 아이는 가장 중요한 당사자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선택권이 없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입양아를 ‘가슴으로 낳은 아이’라고 부르..
#1. 몸에 멍이 든 아이를 세심히 관찰한 어린이집 교사가 지속적 학대의 증거를 모아 신고했지만, 학대로 판정되지 않았다. 그 뒤 사례관리를 맡은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이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지 않고 전화로 부모의 말만 들었다. #2. 경찰은 아동학대신고를 받고서도 ‘아이를 입양하여 키우는 사람이 학대할 리가 없다,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생긴 문제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3. 아이의 몸 상태를 확인한 의사가 아동학대로 신고했지만, 경찰은 입양부모와 알고 지내던 다른 의사가 학대가 아니라고 하자 더는 조사하지 않았다. 전국적 공분을 자아낸 일명 ‘정인이 사건’의 정황들일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1은 2014년 울주 아동학대사망사건의 진상을 조사해 펴낸 〈이서현 보고서〉에서, #2..
툭하면 ‘기승전스위스’ 타령을 했다. 내 또래와 만날 때면 아픈 부모의 돌봄이 자주 화제에 올랐는데 근심 섞인 대화는 ‘나도 그렇게 되면 어쩌나’로 이어졌고, 답 없는 수다는 곧잘 ‘우리는 나중에 안락사가 가능한 스위스로 가자’는 결론으로 치닫기 일쑤였다. 농반진반인 그 말에 담긴 절반의 진심은 전적으로 남에게 삶을 의탁해야 하는 상황을 겪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사랑하는 이들을 알아보지 못한 채 자신의 힘으로 먹고 배설하지 못하는 비참을 견디느니 내 손으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소망이 선택에 대한 환상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건강하고 자기관리에 성실했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진 뒤부터다. 평소 자율성의 상실을 끔찍하게 여기던 사람이 순식간에 가장 피하고 싶어 했던 바로..
새벽 세시의 몸들에게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기획)를 읽고며칠전 써보려다 포기한 후기를 맘 고쳐먹고 쓰는 이유는 내가 '새벽 세시의 몸'을 돌보다 지친 날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1년간 병원을 전전하다 집에 돌아온 병든 아버지. 주말에 간병인 휴가 보내고 내가 부모님 댁에 가서 혼자서는 걸을 수도, 밥도 먹을 수도 없는 아버지 수발을 드는데, 아버지는 새벽 네 시쯤부터 깨어 큰 소리로 혼잣말을 하고, 뭔가 망상을 보셨는지 흠칫 놀라고, 겨우 가라앉아도 불편한 뒤척임의 연속이더군요. 아파서 깊은 잠을 잘 수 없는 사람에게 새벽은 수렁같은 시간대인가봐요.집에 모신지 딱 열흘 되었는데, 우리 가족은 이틀 뒤 다시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기로 결정했어요. 지난 번 모임에서 A님의 말처럼 "만감이 교차"하네요..
올해부터 한 달에 한 번쯤 느슨하게 모인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는다. 가끔씩 쓰던 독서모임 후기. 그 드라이브를 더 이상 쓰지 않아서, 보관 목적 옮겨 놓음. 외롭지 않을 권리 (황두영 지음)를 읽고 [후기] (앞은 생략) 책을 읽고 나니 생활동반자법 입법이 생각보다 무겁게 느껴져 이게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소감, 이 법 자체로는 입법이 가능할까, 여성의 평등이 전제되어야 만들어질 수 있는 법인 것같다는 소감도 있었고요. 지금까지 생활동반자법이 거론될 때마다 '성소수자를 위한 법'이라고만 알려져 매우 좁게 공격-방어가 진행되어온 양상이었는데, 이 책은 생활동반자법이 '고독'에 대한 법이라는 프레임을 제시했고 그 프레임이 적절했다, 마음에 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이 법이 정말 만들어질..
계간지 "뉴필로소퍼" 2020 12호에 실린 "나만의 인생철학 13문13답" 미니인터뷰. 인생철학이라니 제목은 거창하지만 그냥 몇가지 단상들. 이번 호의 주제가 '가족으로 산다는 것'이어서 가족에 관한 질문 포함한 듯. 알라딘 링크 바로가기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3028966 ----------------------------------- 1. 삶의 기준은 무엇인가? 행동하면서 생각하기. 내가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가면서 배우겠다는 원칙. 2. 당신이 받은 교육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발견되고 실현되기를 기다리는 영혼 저 깊은 곳의 '진정한 자아'란 없으니, 다양한 '여러 자아들'을 실험하라는 가르침. 3. 일상생활을 하면..
2020년 9월 8일 과제 하나를 내려놓다. 그 일을 하는 동안, 끝낼 때 자주 떠올렸던 글. 그리고 지금도. 소설가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 중에서; “그것보다는 늘 지고 있다는 느낌이 어렵습니다.” 모든 곳이 어찌나 엉망인지, 엉망진창인지, 그 진창 속에서 변화를 만들려는 시도는 또 얼마나 잦게 좌절되는지, 노력은 닿지 않는지, 한계를 마주치는지, 실망하는지, 느리고 느리게 나아지다가 다시 퇴보하는 걸 참아내면서 어떻게 하면 지치지 않을 수 있을지 현재는 토로하며 물었다. …...(중략)...... “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어떻게든 한껏 멀리.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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