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반, 세계 최초 낭가파르바트 단독 등반, 세계 최초 히말라야 8000미터급 14좌 완등…. 독일 출신의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에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숱한 ‘세계 최초’들. 첨단 지원 장비나 남의 도움 없이, 거창한 명분 없이 혼자서 높이, 많이 오르는 것을 추구했던 남자. 그에게도 두려움이란 게 있을까. 단호하고 약간은 오만한 구도자의 이미지를 상상하며 책을 펼쳤는데, 처음부터 당황스럽다. 책은 1973년 낭가파르바트 단독 등반을 시도하던 메스너가 암벽에서 두려움에 몸을 떠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곳에 있다는 무서움, 앞으로 어떠한 행동을 해야만 한다는 두려움’에 짓눌리고, ‘내려가고 싶다’와 ‘올라가야 한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오죽 결정을 내리기 힘들었으면 ‘텐..
산티아고에 대해 뭘 더 읽을 필요가 있을까. 프랑스 생장피드보르에서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800km에 이르는 순례길. 이미 그 길 여행기 3권을 읽었다.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부터 시작해 도보여행가 김남희 씨의 ‘혼자 떠나는 걷기여행-산티아고 편’, 미국 수녀님인 조이스 럽의 ‘느긋하게 걸어라’까지. 이젠 눈을 감으면 순례자 숙박소 앞의 풍경, 길가의 우물까지 떠오를 정도다. 그런데도 자석처럼 이끌려 목록에 한 권을 더 추가하게 됐다.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책을 읽고 난 뒤, 사는 일처럼 길 역시 누가 걷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수십 번씩 변주될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한다. 독일의 코미디언 하페 케르켈링이 쓴 이 책의 소문은 국내에 번역되기 전부터 들었다. ..
'글쓰기 생각쓰기'. 이 밋밋한 제목은 이 책에 어울리지 않는다. 제목은 마치 논술대비용 참고서 같다. 이 책이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기초 기술, 단어와 문장 다루는 방법을 이야기할 거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책은 ‘글쓰기’보다 글을 ‘잘’ 쓰는 방법을 다뤘다. 원제도 ‘On Writing Well’이다. 그냥 무난히 쓰는 것 말고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이 계속 던지는 질문이다. 저자가 중요하게 삼는 기준은 ‘어떻게 남들만큼 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남과 다르게 쓸 것인가’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잘 쓴 글’이란 꼭 ‘나’를 주어로 삼지 않더라도 글쓴이가 어떤 사람인지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이다. 이를 위한 글쓰기의 원칙, 태도와 함께 인터뷰 여행기 회고록 비평 유머 등 각각의..
엄청 뒷북입니다. -.-; 새해 첫달의 3분의1이 지나가려는 마당에 '지난해' 베스트 놀이라니.... 기래두 걍 흘러간 노래 다시 부르기로 맘 먹은 건 제 탓이 아니고 순전히 Inuit님 때문입니다. ^^; 몇달 방치해둔 RSS 리더기에 쌓인 글을 게걸스레 읽다가, Inuit 2007: 올해 읽은 책 Best 5 에서 그만 제 이름을 봤지 뭡니까. 블로거 벗을 섭섭하게 할 수야 없지요. 털썩 무릎꿇고 Best 5 뒷북 선정에 들어갔습니다.^^ 2006년에 올해의 책을 고를 땐, 그해 출판된 책들만 대상으로 했는데, 지난해엔 신,구간 상관없이 읽어서 오래 전에 출판된 책들도 들어있네요. 골라놓고 보니 블로그에 리뷰를 쓴 책은 한 권 밖에 없군요. 흠..이렇게 게을러서야...리뷰가 없는 책들은 인터넷 서점 ..
니체가 눈물을 흘리다니... 정수리에 수직으로 내리꽂는 폭포같은 철학자 니체는 눈물 따위 경멸할 것만 같은데 말이죠. 심리치료의 권위자로 손꼽히는 어빈 얄롬이 쓴 소설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는 실제 사건과 허구를 조합한 팩션입니다. 니체와 루 살로메 등 등장인물들이 워낙 유명한 사람들인데다 미국에선 꽤 오랜기간 베스트셀러 였던 모양입니다. 올해 영화로도 만들어졌더군요. 위의 사진은 책 표지가 아니라 영화 포스터입니다. imdb 별점이 4개 (10개 만점)인 것을 보면, 영화는 꽝인 모양입니다. -.-; 니체 역할을 맡은 배우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당최 모르겠는데) 아먼드 아상테 Armand Assante (오른쪽)는 분장을 하면 그럭저럭 니체를 닮을 것 같죠? 하지만 루 살로메를 연기한 배우 캐..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자기계발서가 1,2위를 차지하는 것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요즘도 '시크릿'과 '이기는 습관'이 번갈아 1위에 오르내리고 있더군요. 자기계발서들이 얄팍하다는 비난을 많이 듣지만, 전 (아닌 척 하면서도) 자기계발서들을 많이 읽는 편입니다. ^^; 대개는 읽을 때 '맞아, 맞아' 하면서도 책을 덮고 나면 방금 읽은 내용이 싸악 휘발돼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참 뻔한 소리들인데 왜 읽을까 후회하기 시작하는 것도 그때부터죠. ^^; 서점을 어슬렁거리다 발견한 ‘역설의 심리학’ 은 뻔한 자기계발서들을 호되게 비판하는 심리학자의 책입니다. 저자가 말기암을 극복하면서 겪은 일들을 바탕 삼아 자기계발서들의 주요 레퍼토리들-자아존중감을 가질 것, 희망을 잃지 말 것, 긍정적으로 살 것..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자는 것’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읽고 나면 메아리처럼 머릿속에서 울려오는 구절이다. 이 말은 책 속에서 비슷한 말들로 여러 번 변주된다.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 ‘버티면 버티어지는 것이고 버티지 않으면 버티어지지 못하는 것’, ‘삶의 자리는 성 밖에 있는데 버티어야 할 것이 모두 소멸될 때까지 버티어야 하는 것인지’…. 비슷한 말들이 침략국과의 타협을 거부하는 관료의 입에서도, 얼어 죽는 군병을 살려야 할 때 종친의 옷이나 챙기는 관료의 입에서도, 침략국의 앞잡이가 되어 항복을 강요하는 통역관의 입에서도 흘러나온다. ‘당면한 일’을 어떻게 당면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의 차이, 말들이 난무할 뿐 등장인물들의 성격적 차이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모든 등장인물들의 입과 속말을..
"하나의 다리를 건설하는 일이 만일 그곳에서 땀흘리며 일하는 이들의 의식을 풍요롭게 하지 못할 양이면, 차라리 그 다리는 만들지 않는 편이 낫다. 시민들은 예전처럼 헤엄을 쳐서 건너든가 아니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된다. 다리는 사회 전체에 절대로 데우스엑스마키나 식으로 만들어져서는 안된다. 그런 방식이 아니라 시민들의 피와 땀, 두뇌 속에서 태어나야 한다." -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서/ 서경식의 '소년의 눈물'에서 재인용 - 데우스엑스마키나 (Deus ex machina) = 소설과 희곡 영화 등 모든 서사의 종결부에서 갑작스레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인위적이며 부자연스러우며 안이한 방식을 뜻한다. 고대 그리스 고전극에서 자주 활용되던 극작술에서 유래한 말이다. 주인공이 궁지에 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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