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를 쓰고 있는 내 마음 속에는 어떤 가설이 점점 확실해져 가고 있다. 그것은 국가의 흥륭도 쇠퇴도 같은 요인의 결과라는 가설이다. 베네치아는 외부인을 거부하는 것으로 대업을 이루었다. 하지만 또한 이 방침을 관철함으로써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고대 로마도 마찬가지다. 이쪽은 반대로 문호를 열어 대국이 되었으나 쇠퇴도 같은 요인으로 일어났다. 국경을 넓혀 사람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줌으로써 대제국이 되었으나 그로 인해 수도 로마의 기능이 허해지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시오노 나나미 ‘다시 남자들에게’ 중에서 - (요네하라 마리 ‘마녀의 한 다스’ 에서 재인용) 국가의 흥망이 같은 이유 때문이라는 것... 사랑도 마찬가지 아닐까. 처음에 우리를 어떤 사람에게 끌리게 만드는 특성..
If의 심리학 인생의 마지막까지 가져가지 말아야 할 유일한 감정이 있다면, 그건 ‘후회’라고 생각했다. 혼자 떠올린 기특한 생각이 아니라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파울로 코엘료 등 지혜로운 분들이 먼저 생각해내고 그렇게 권했다. 그 조언을 착실히 따르려 애쓰면서, 뭘 할까 말까 고민할 때마다 판단 기준으로 ‘나중에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곤 했다. 후회하지 않는 삶이야말로 잘 산 인생의 전범이 아닐는지. 그런데 ‘IF의 심리학’을 쓴 미국 심리학자 닐 로즈는 후회가 그렇게 기를 쓰고 피해야 할 부정적 감정이 아니란다. 후회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뇌의 반사작용이므로 막으려 해봤자 소용없고 되레 유익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이 책은 문학의 영역에선 곧잘 비장하게 다뤄지는 후회라는 감정을..
어둠 속의 남자 -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열린책들 그래, 인생은 실망스러워. 하지만 네가 행복하기를 바라. 이 괴상한 세상이 굴러가는 동안. 폴 오스터의 소설 ‘어둠 속의 남자’를 덮고 난 뒤 이 세 마디가 귓전에 오래 맴돌았다. 이 말들은 소설 속의 각각 다른 맥락에 등장하는 구절이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원래부터 하나였던 말처럼 들린다. 인생은 실망스럽고 여하튼 세상은 계속 괴상하게 굴러가겠지만 고통과 혼돈의 와중에도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 이 소설에서 폴 오스터가 들려주는 그 ‘방법’은 ‘이야기’이다. 72살의 은퇴한 도서비평가 브릴은 45세 된 딸, 23세 된 손녀와 함께 산다. 1년 전 아내가 죽은 뒤 브릴은 교통사고로 휠체어 신세가 되었다. ..
" '인생은 풀과 같은 것. 들에 핀 꽃처럼 한번 피었다가도 스치는 바람결에도 이내 사라져, 그 있던 자리조차 알 수 없는 것'('시편' 15~16) 주여. 그렇게 하찮은 존재에다 왜 이렇게 진한 사랑을 불어넣으셨습니까. " - 박완서의 '한말씀만 하소서' 중에서- 은평구 나이트클럽의 불을 끄다 숨진 변재우 소방관의 어머니 이야기 를 읽다가 왈칵 눈물을 쏟았다. 변 소방관의 어머니는 지난해 남편을 잃고 몇달 지나지 않아 변 소방관보다 다섯살 터울 아래인 딸을 심장마비로 잃었다. 이제 하나 남은 혈육인 아들까지 잃어버린 이 어머니는 위암을 앓고 있다. 아무리 세상의 행,불행이 고르게 배분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렇지, 어쩌자고 이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고통을 몰아주는가... 절대자가 있다면 삿대질이라도 하..
옛날에 두 대의 소시지 기계가 있었다. 한 대는 열심히 돼지고기를 받아들여 소시지를 만들었지만 다른 한 대는 '돼지가 나한테 무슨 소용이람' 하는 생각으로 돼지에 대한 관심을 끊고 자기 내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내부는 더 공허하고 어리석어 보였다. 결국 이 기계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 버트란트 러셀 '행복의 정복'에서- 석달 전,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을 때 나 자신이 텅빈 내부만 들여다보는 소시지 기계처럼 느껴지던 날들이 있었다. 걸으면서 본 것이 오직 나 자신 뿐이었던 날들. 내 자책, 내 후회, 내 불안...그러려고 길을 떠난 것이 아니었는데도. 낯선 풍경과 사람들, 세상의 무수한 사건들은 내가 관심을 기울일 때에만 내 경험이 된다..
위대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만약 과학의 역사를 한 줄로 줄여서 표현한다면 "모든 것이 원자로 되어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신의 몸 속에 있는 원자들은 모두 몸 속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몇 개의 별을 거쳐서 왔을 것이고, 수백만에 이르는 생물들의 일부였을 것이 거의 분명하다. 우리는 정말로 엄청난 수의 원자들로 구성돼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죽고 나면 그 원소들은 모두 재활용된다. ...그러니까 수명이 상대적으로 짧은 우리는 모두 윤회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죽고나면 우리 몸 속에 있던 원자들은 모두 흩어져서 다른 곳에서 새로운 목적으로 사용된다. 나뭇잎의 일부가 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몸이 될 수도 있으며, 이슬방울이 될 수도 있다. 원자들은 실질적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나는 내가 지금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내가 어떤 인간인지는 알아. 내 자식들은 자기자신을 좋아하지만, 자기가 어떤 인간인지는 몰라. 너 같으면 어떤 쪽이 더 나쁜 것 같니?" -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에서- 글쎄... 어느 쪽이 더 나쁠까요? 어젯밤, 활자로 아픈 눈을 식히려고 다른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이것도 중독입니다요....-.-;) 몇달 전에 읽었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에서 내가 한번은 접어두었음직한 자국을 따라 듬성듬성 책을 펼쳐보다 멈춘 대목입니다. 9.11 테러로 죽은 아빠를 '더 이상 상상하지 않기 위해' 소년 오스카는 아빠에게 배달되어온 봉투에 써있던 '블랙'의 정체를 찾아나섭니다. 블랙이 사람의 이름일거라고 단정한 오..
전 경영학에 문외한이지만, 경영학자들 3명의 신간 출간 소식이 들리면 어쨌든 책을 사고 봅니다. 피터 드러커, 찰스 핸디, 톰 피터스가 그들이죠. 제게 피터 드러커는 그 어깨 위에 올라서서 지평 너머를 바라보고 싶은 거인과도 같고, 톰 피터스는 그 열정에 한번 전염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선동가 같다면, 찰스 핸디는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편안한 선생님의 느낌입니다. 셋 중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죠. 스스로 '늦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제가 보기에도 '늦된 사람'이지만 ^^, 피터 드러커 처럼 비범한 면모를 갖추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경영의 구루라기 보다 현실을 잘 설명하려 애쓰는 사회철학자 라는 호칭이 더 적절할 것같은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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