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신머리가 없어서 뒤늦게 블로그에 소식 알립니다. 최근에 번역한 책 "나는 공짜로 공부한다"가 출간됐습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 책 소개 바로가기) 번역책 제목에 '공짜'라는 단어가 들어가니 (원제: The Oneworld Schoolhouse), 책이 싸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드는데요...;;; 헤지펀드 애널리스트로 일하면서 조카의 수학공부를 돕던 영민한 청년이 혁신적인 온라인 교육사이트를 만든 경험과 새로운 교육에 대한 상상을 들려주는 책입니다.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교육의 이런저런 틀을 뒤집으며 저자가 '이게 왜 안돼?'하고 속사포처럼 던지는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번역하는 동안 꽤나 재미있었어요. 이번 책은 공동번역으로 작업했는데, 공동번역자를 대표하여 쓴 옮긴이의 말을 아래 붙입니..
"이제 네가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내가 물을 터이니, 알거든 대답하여라." 욥의 부르짖음에 대한 야훼의 답변은 이렇게 시작한다. 몇 년 전 욥기를 읽으며 놀랐던 건, 성당을 한참 다녔던 중학생 때의 어렴풋한 기억과 달리 단 한 번도 스스로가 죄인이라고 고백하지 않는 욥의 태도였다. 욥은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왜 내게 이런 짓을 하느냐고 야훼에게 따진다. 왜 이러는지 대답 좀 해보라고 끈질기게 묻는다. 왜 악한 자가 복을 누리고, 죄 없는 사람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죄 없는 한 사람이 치르는 끔찍한 고통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욥은 집요하게 묻고 따진다. 반면 그를 위로하러 온 친구들은 야훼 앞에 욥의 무릎을 꿇리려 애를 쓴다. 여섯 번에 걸쳐 욥에게 "무슨 이유가 있으니 이런 벌..
4월, 산수유와 진달래 위에 내린 눈. 지난 주말 친구들과 영주 여행을 다녀왔다. 소수서원-부석사-소백산의 희방사를 둘러보고 단양에 들러 돌아온 길. 소백산 희방사 가는 길에 저렇게 예쁘게 눈꽃이 피었다. 바람이 몹시 불고 추워서 죽령옛길 걷기도 포기했지만, 산수유와 눈꽃이 한 공간에 있는 비현실적 풍경이 추위도 잊게 하는지... 희방사까지 걷기 시작. 꽃이 피는 계절에 갑자기 눈 덮인 산 속을 걸으니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다른 차원의 공간에 시간 이동을 한 듯한 느낌. 여행 출발할 때부터 '강풍과 폭우' 예보가 있었는데, 이 날씨에 괜찮을까, 내가 걱정하자 친구들은 호기롭게 말했다. "날씨 궂어 사람들이 덜 오면 한갓지고 더 좋지 무슨 걱정이야!" 서울에서 함께 내려간 일행 다섯 명 중 운전을 할 줄 ..
컴퓨터 폴더 정리하다가 찾은 글. 재작년인가, 인류학과 창립 50주년 기념 문집에 논문을 쓸 역량은 안되고, 동문 이야기 코너에 썼다. 선배의 반 부탁, 반 강제가 없었더라면 이조차 쓰지 않았겠지만... 이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장기 휴학 상태가 될 줄은 모르고 대학원은 마칠 거라고 상상했던 듯하다. ㅠ 사실 코스는 마쳤고 논문만 쓰면 되는데... 논문 주제를 정하질 못했다. 한때 대강의 주제를 정하고 관련 논문들을 찾아 읽기도 했으나, 내가 논문을 써서 대답하고 싶은 '질문'이 영 떠오르질 않았다. 지도교수인 선배는 문제 자체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논문을 쓸 수 있는데 내가 자꾸 "그래서 해결책은 뭔데?"쪽에 너무 관심이 쏠려 있어서 그런 거라고 했다. 단체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라서 더 그랬는지..
나는 신문기자를 하다가 4년 전에 그만두고 지금은 국제구호개발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일한다. 그런 이력을 아는 사람들에게서 가장 자주 듣는 촌평은 “슈퍼 갑에서 을로 옮겼네?”이다. 내 딴엔 고심해서 내린 결정을 ‘갑을의 지위 전환’으로 명쾌하게 정리하는 촌평을 하도 자주 듣다보니 미욱한 내 눈에도 갑을관계의 풍경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요즘은 TV 개그 프로그램에 ‘갑을컴퍼니’라는 풍자코너도 생겼고, 대기업과 하청업체의 관계에서부터 대북관계, 심지어 친구나 연인, 부부사이도 갑과 을로 설명하면 누구나 단박에 알아듣는다. 이제 어느 누구도 갑과 을을 단순히 계약서상의 쌍방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회적 지위와 권력의 우열이 있는 모든 관계는 죄다 갑을관계이며 사람들은 그 관계 속 자신의 위치에 더욱 민..
블로그에 오신 분들께. 위의 그림은 2년째 내전 중인 시리아를 탈출해 난민촌에서 생활하는 아이가 그린 그림입니다. 총격을 당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장면에 대한 아이들의 이 묘사는 상상하거나 과장한 게 아니라 그들이 실제로 겪은 현실입니다. 15일은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지 만 2년이 되는 날이예요. 그 날을 앞두고 제가 일하는 세이브더칠드런은 오늘 '포화 속의 아이들'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그 내용을 소개하는 보도자료를 아래 붙였습니다. 평소의 독백체와 달리 여기 오신 분들께 말을 거는 포스트를 올리는 이유는 여러분이 아주 소소한 행동 하나라도 같이 해주셨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예요. 세이브더칠드런은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안보리 이사국이 시리아 전쟁 중단과 제재를 만장일치로 결의해달라는 서명운동을..
모처럼의 연휴에 심하게 앓았다. 꼼짝 못하고 드러누워 계속 비몽사몽. 정신이 혼곤한 와중에 잠깐씩 깰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트위터도 보고 책도 들췄는데, 사람들의 봄 나들이 자랑, 불타버린 대한문 앞 쌍차 분향소, 책 속의 아름답고 비통한 이미지들이 마구 뒤섞여 꿈속으로 몰려들어왔다. 깨어 있는 상태와 꿈 속이 분간이 안 될 지경.... 그렇게 읽은 책이 서경식의 '나의 서양음악순례'다. 내가 좀비 같은 상태여서 제대로 읽었는지나 의심스럽고, 클래식에 문외한이지만, 참 좋은 책 (이렇게 말하려니 좀 황당하긴 하다..). 의도한 건 아닌데 10여 년에 걸쳐 서경식의 '소년의 눈물', '나의 서양미술순례', '나의 서양음악순례'를 다 읽게 됐다. 세 권의 책을 늘어놓으면 섬세한 내면, 다소 우울한 감수성을 지..
제주 신천리 바닷가 신천목장 (올레 3코스) 제주 표선 해수욕장 (올레 3코스) 비양도가 보이는 협재해수욕장 (올레 14코스) 제주 바다의 서로 다른 색채. 동쪽 올레 3코스의 신천리 바닷가와 서쪽 올레 14코스의 협재 해수욕장. 1.5일의 짧은 일정에 제주도 한복판에 자를 대고 가로로 금을 그으면 맞닿을 만큼 동서로 떨어진 곳을 다녀온 이유는.......미련하기 때문이다. 14코스 쪽에 숙소를 잡고도, 1주일 전 한겨레신문에 나온 신천리 바닷가 풍경 (바로 이 기사)에 홀딱 빠져 동쪽 올레 3코스를 걸어야지 했다. 문제는 그러면 숙소를 취소하고 동쪽으로 잡아야 하는데, 선불로 숙박료를 모두 납부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할 때까지 그 생각을 한번도 하지 못했단 점.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 일로 정신이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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