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치료를 공부하는 동생이 밀가루 반죽을 조물조물 만져서 청바지를 만들어왔다. 무릎 접히는 부분의 뒷 주름까지 어쩜 이렇게 잘 만들었는지. 역시 청바지는 뒤태~ 내친 김에 오븐에 구웠더니, 물 잘 빠진 빈티지 청바지의 느낌. 게다가 고소한 빵 냄새가 난다. 청바지 엉덩이에 코를 박고 냄새 맡는 나를 보더니, 장난기가 발동한 동생이 이걸 써먹을 방법을 생각해냈다. 똥꼬 명함꽂이 완성! 똥침 놓는 기분으로 명함을 꽂으며 놀 수도 있고, 심심하면 고소한 엉덩이 냄새 (엥?)도 맡아주고~ 룰루랄라~~~ 엽기적인 그녀가 이렇게, 또 요렇게, 말짱한 전시회를 했다는 것은 말하지 않겠다. ^^
나는 위로의 말에 서툴다. 상가에 가면 뭐라 말해야 할지 늘 난감하다. 위로를 받는데도 서툴다. 내가 상주가 되었을 때에도 사람들이 와서 위로의 말을 건넬 때마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줄곧 민망했다.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아주거나 어깨를 두드리던 사람들이 그냥 대하기 맘 편했다. 위로를 주고받는 상황을 불편해하는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이 중에 늘 주변 사람에게 잘 대하고 잘 웃던 사람이 있었다. 그가 언젠가 상가에서 위로의 말을 하려고 상주의 손을 잡았는데, 사람들을 만나면 늘 하던 버릇대로, 자기도 모르게 웃고 있더라고 했다. 그런 자신을 그 사람은 오래 싫어했다. 위로의 말이 얼마만큼 위로가 되는지는 위로하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
4월 둘째 주, 네팔에 다녀왔다. 수도 카트만두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 다시 차를 타고 1시간을 가는 시골인 반케 지역 나우바스타 마을에 새로 지은 초등학교를 보러 나선 길. 내가 일하는 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의 소개로 이 학교를 지은 한국의 후원자를 모시고 다녀왔다. 내게는 특별했던 출장이다. 모시고 간 한국의 후원자가 내 부모님이셨기 때문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5년 전 세상을 뜬 내 남동생이 후원자이다. 아들이 남긴 유산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던 부모님이 돈을 의미 있게 쓸 곳을 찾고 싶어 하셨고, 내가 일하는 단체를 통해 연이 닿아 네팔에 초등학교를 지었다. 처음 소개를 받을 때부터 이 학교는 여러 모로 마음이 쓰였다. 마을 사람들은 정부 군과 마오이스트 사이에 10년 가량 이어진..
슬프다...시간의 무정함.
백만 년만의 잡담 포스팅. # 2월말에 집안을 발칵 뒤집어놓는 공사를 했는데, 젤 맘에 드는 건 이 액자를 제자리에 걸어둘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34일간 걸어간 끝에 산티아고에서 받은 순례자 증서. 졸업사진이고 상장이고 예전 결혼사진이고 뭐고 오로지 나하고만 관련된 걸 내 손으로 액자에 넣어 벽에 붙여본 건 머리털 나고 처음이다. 컴퓨터 스크린을 들여다보느라 눈이 아파질 때마다 고개를 들어 저 액자를 본다. 4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액자를 볼 때마다 눈 앞에 펼쳐지는 구불구불한 길. 사방을 둘러봐도 풀과 나무 뿐인 평원에서부터 자궁처럼 깊은 숲길까지. 언제 다시 갈 수 있게 될까. 잊지 못할 길. 지금도 늘 걷고 있는 길. # 이번에 공사 하면서 알라딘 중고서점에 20권씩 포장한 책 11박스를 팔았다..
# 조만간 집 공사를 해야 해서 밤마다 짐 정리 중이다. 살고 있는 집에서 하는 공사라, 미리 짐 치워놓는 게 큰 일이다. 오늘 밤까지 6단 짜리 책장 4개를 죄다 비우는 일을 마쳤고, 책장 위에 올려놓고 잊고 있던 온갖 파일노트들을 끌어내려 전부 버렸다. # 오늘 버린 파일 노트는 모두 40권. 93년부터 2001년 미국 연수를 가기 직전까지 내가 쓴 기사를 정리해뒀던 것이다. 93년 이전, 그리고 연수를 다녀온 뒤론 스크랩을 하지 않았다. 양면 40쪽 짜리 파일 노트니까 모두 1600 페이지. 9년간이라 치면 1년에 178건, 평균 이틀에 한 건씩 기사를 쓴 셈. 93년 2월부터 2001년 6월까지이니 기간을 정교하게 계산하면 이틀에 한 건 이상일테고, 아무튼 기사 적게 쓰고 밥 축내며 놀진 않았구나..
다 쓴 수첩을 정리하다가, 지난해 11월 말 부산에서 열린 세계개발원조총회에서 적어둔 메모가 눈에 띔. 그때 개막식에 힐러리 클린턴이 참석해서 축사 비스무리한 걸 했다. 국제 개발에서 미국이 이런저런 역할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는데, 심드렁하게 듣던 귀에 와서 박힌 이야기가 있었다. 어떤 일을 할 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input 과 outcome 을 헷갈리고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었다. 예를 들어 저개발국의 교육을 지원하겠노라고 교재를 제작해서 보급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교재 제작과 보급 (input) 자체가 교육 수준의 상승 (outcome) 을 뜻하는 것은 아닌데, 실제로는 input 만으로 어떤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족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다. 국제개발의 영역이 아니더라도 그런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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