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집을 나서 당일치기 부산 출장을 다녀왔다. 시간 대비 효율을 생각하면 사실 안가느니만 못한 출장이다. 주말로 다가갈수록 점점 바빠지는 내 일의 특성도 그렇거니와, 대충 전화로 해결하려면 충분히 할 수도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산의 일을 처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무조건 간다, 맘 먹었다. 순전히 바다 때문이다. (저랑 같은 회사 다니는 블로거님들, 그냥 모른체 해주세요....당신도 가끔 그래야 할 때가 있지 않나요? ^^;) 바람이 몹시 불고 파도가 거친 해운대 앞에 잠시 머물다 다시 시내로, 서울로 돌아오다. 짧고 낯선 꿈을 꾸고 돌아온 기분. 하루에 작은 균열을 내고 돌아온 것이 괜시리 뿌듯하다. 늦은 밤 광화문 사무실 안인데, 해운대 바닷가에서 신발 안에 들어간 ..
나를 만든 책들은 대부분 나의 동침자들이다. 지금까지 읽은 책의 절반가량을 침대에서 혹은 바닥에서 뒹굴며 읽었다. 난 아마 전생에 땅에 붙어살던 지렁이가 아니었을까... 좋아하는 책일수록 하도 붙들고 뒹군 탓에 심하게 구겨졌고 표지가 너덜너덜하다. 과도한 스킨십과 학대의 강도를 애정의 지표로 삼았던 모양이다. ^^; 누워서 책을 읽을 때 가장 불편한 건 불끄기였다. 책을 읽다 꾸벅꾸벅 졸리기 시작하면 적당하게 불을 끄고 자야 하는데, 불을 끄러 일어나자니 잠이 깨고, 그냥 놔두자니 눈꺼풀 사이로 빛이 스며들어 잘 수가 없는 거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한담...책상 위에 있던 부분조명등을 침대 옆으로 옮겨놔 봤다. 불을 끄러 일어나야 하는 애로는 일단 없다. 하지만 이 경우의 문제점은 조명 범위 안에 책..
"좀 웃기지 않니? 패션 따위에 신경 쓰기엔 너무 진지하다고 주장하는 네가 사실은 패션계 사람들이 고른 색깔의 스웨터를 입고 있다는 게?" -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미란다가 앤드리아에게- 이 영화, 한달반쯤 전 독일가는 비행기 안에서 봤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제 바쁜 일 손 털고 '난 왜 이렇게 같은 일을 계속해도 여전히 허둥댈까...'그런 생각으로 시무룩해 있던 중, 이 '프라다를 입은 악마'가 생각났다. 뭐, 내게도 악마같은 상사가 있었던 건 아니다. 차라리, 악마 같아도 좋으니 모든 판단을 믿고 위임할 수 있는, 판단이 100% 정확해서 그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상사가 있었으면....하고 바랄 때가 있다. 물론 비현실적 기대라는 것을 알지만....나 때문에 속터질 내 후배들..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울려오면 여전히 온몸이 쭈뼛해지며 발이 들썩거린다.…제트기나 시동 걸린 엔진소리, 징 박은 말발굽 소리만 들어도…속이 뒤틀리듯 가슴이 꽉 메는 것이다.’ 마음을 들뜨게 하는 바이러스엔 약도 없다. 이 오래된 불치병에 속절없이 포로가 된 자는 몸이 근질근질한 청춘이 아니라 58세의 노작가다. ‘분노의 포도’ ‘에덴의 동쪽’으로 유명한 존 스타인벡이 쓴 '찰리와 함께 한 여행'을 읽다. 40여년전에 한 여행이지만, 낡지 않았다. 글맛이 좋은 탁월한 산문집이다. 저자는 “미국에 관해 글을 쓰면서도 미국의 시궁창이 풍기는 진짜 냄새를 모른다면 범죄에 해당될 일”이라며 짐을 싸기 시작했다. 중병을 앓고 난 뒤였지만 “수명을 조금 더 늘이자고 장렬한 삶을 버릴 생각은 없다”며 짐짓 호..
‘더 게임’- 미국판 ‘작업의 기술’을 읽다. 이렇게 은밀한 사교(邪敎)조직 같은 모임이 실제 존재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자 유혹을 업으로 삼는 고수들이 비밀 아지트에 모여 가장 효과적인 유혹의 기술을 교류하고 남자들을 가르치는 워크숍을 연다. 비밀 기술로 무장한 ‘선수’들은 밤마다 여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작업장’인 바와 나이트클럽을 배회한다. 미국 뉴욕타임스의 기자였고 현재 잡지 롤링스톤스의 객원 필자인 닐 스트라우스가 쓴 이 책은 내로라하는 ‘작업(Pickup)’의 고수들, 즉 ‘픽업 아티스트’들의 세계에 대한 르포르타주이자 체험기이다. 페미니스트 혹은 건전한 일부일처주의자라면 도중에 책을 내던지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여자들은 늘 게임의 대상으로만 묘사되고 난잡한 성관계에 대한..
‘라디오스타’ ‘왕의 남자’ ‘황산벌’ 등을 만든 영화감독 이준익은 몇 달에 한번씩 띄엄띄엄 보는데도 내가 ‘친하다’고 생각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사무실 근처를 지나가다 전화해서 마침 시간이 맞으면 커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사이. 일로 만날 때도 일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떠들며 놀다가 돌아오곤 한다. 그 이전의 흥행 기록을 모두 깬 '왕의 남자'이후 무척 유명해졌는데도 그는 여전히 한결 같아서 좋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땐 그는 "키드캅이라고 뭐 그런 영화 한번 만들어봤어"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던 소규모 영화수입사 사장이었다. 몇 편의 영화로 '뜬' 뒤에도 그는 여전히 '라디오 스타라고 뭐 그런 영화 한번 만들어봤어. 보러와"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추석 직전, 일 때문에 인사..
“당신은 빅토르와 함께 가야 해요. …당신은 그를 유지시켜주는 존재잖아요. 당신이 이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면 아마 후회할 거예요. 물론 오늘은 후회하지 않겠죠. …하지만 곧, 그리고 남은 인생 동안 영영 후회하게 될지도 몰라요.”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주인공 릭(험프리 보가트)이 극적으로 재회한 옛 애인 일리자(잉그리드 버그만)와 헤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잊기 어려운 명장면이다. 일리자는 사랑하는 릭과 머물 것인지, 남편과 떠날 것인지 갈등하다 릭의 간곡한 설득으로 비행기에 오른다. 그러나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인 이 책의 저자는 일리자가 카사블랑카에 머물렀더라면 “걱정했던 것보다는 훨씬 행복했을 것이며 물론 오늘은 아니었을지라도 곧, 그리고 남은 인생 동안 행복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마음은..
짜증나고 머리아픈 날 오후에 날아든 반가운 엽서! 한달전 쯤 서울 서초동 교보문고에서 열린 리영희 선생과 독자와의 만남 을 취재한 적이 있다.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약간 착잡했고, 블로그에 글을 쓴 뒤 잊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오후 리영희 선생님이 직접 쓰신 엽서를 받았다. 날 기억하시리라고, 내가 쓴 글을 보셨으리라고 상상도 못했다. 지병 후유증으로 선생님 오른손이 약간 떨리는 걸 직접 봤는데.... 손수 엽서를 써보내주신 선생님의 정성에 송구스럽고 콧날이 시큰해지다.....
- Total
- Today
- Yesterday
- SNS
- 엘 시스테마
- 김진숙
- 책
- 인생전환
- 블로그
- 중년의터닝포인트
- 김현경
- 제주올레
- 터닝포인트
- 단식
- 서경식
- 1인분
- 산티아고
- 알라딘 TTB
- 인터넷 안식일
- 스티브 잡스
- 다문화
- 여행
- 영화
- 사랑
- 글쓰기 생각쓰기
- 몽테뉴
- 세이브더칠드런
- 인류학
- 중년
- 조지프 캠벨
- 차별
- 김인배
- 페루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