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친구가 있습니다. 주말에 친구들과 바비큐 파티를 한다고 오라기에, 남산 기슭 해방촌의 한 연립주택 옥상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하게 됐지요. 파티 장소를 알리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에 계속 '브라이(braai)' 라고 떠서 무슨 뜻인가 했더니, 남아공 사람들은 바비큐 파티를 '브라이'라고 부르더군요. 오후 5시쯤 도착하니 전부 식탁 주변에 둘러서서 열심히 요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 옆에 가만히 서 있기도 뻘쭘해서, 소스 통에 손을 담그고 꼬치구이 만드는 일을 거들었습니다. 소사티(sosatie) 라는 남아공 요리인데요. 오른쪽 꼬치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양고기와 돼지고기 썬 것과 파인애플, 양파 등을 말레이시아 카레로 양념해 꼬치에 꿰어 구우면 끝인, 아주 간단한 요리입..
오래된 숲에 가본 적이 있으신지요. 적막함이 뒤덮은 숲 속이지만 뭔가 미세한 움직임의 기운이 늘 귓전과 뒤통수를 간질이지 않던가요. 저 굵은 나무 뒤편 어디에선가 날 지켜보는 다른 생명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때론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하지요. 산림학자 차윤정이 쓴 ‘나무의 죽음’을 읽다보면 오래된 숲에 들어설 때마다 느끼는 이 미세한 기운이 실은 평온함 속에서 격렬하게 움직이는 생명의 역동을 증거하는 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오래된 숲의 나무를 주인공 삼아 새로운 종의 탄생과 소멸이 어떻게 펼쳐지는가를 다뤘습니다. 얼마 전 이 책을 읽은 뒤 강원도 횡성의 산자락에 올랐는데,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나무, 그 위에 피어난 이끼, 나무 밑동의 버섯들이 예사롭지 않게 눈에 들어오더군요...
동네의 자주 다니는 길목에 그 유명한 '총각네 야채가게' 체인점이 얼마전 새로 문을 열었습니다. 원래 있던 자리에서 매장 크기를 두 배로 키우고 거의 10명에 가까운 '총각'들이 공격적으로 장사를 하더군요. 밤에 학교 운동장을 돌러 나가면 하루 장사를 마치기 직전인 야채가게 총각들이 야채 바구니들을 둘러매고 남은 야채를 떨이로 팔러 오곤 했습니다. 저녁 운동을 나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지갑을 갖고 다니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던지, 요즘은 퇴근하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지하철 역 입구에서 총각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지하철 역 입구에선 야채보다 주로 과일을 떨이로 싸게 팝니다. 총각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은 보기 좋지만, 동네마다 있던 작은 야채가게들이 다 문을 닫게 생겨 좀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편의점 체..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자는 것’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읽고 나면 메아리처럼 머릿속에서 울려오는 구절이다. 이 말은 책 속에서 비슷한 말들로 여러 번 변주된다.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 ‘버티면 버티어지는 것이고 버티지 않으면 버티어지지 못하는 것’, ‘삶의 자리는 성 밖에 있는데 버티어야 할 것이 모두 소멸될 때까지 버티어야 하는 것인지’…. 비슷한 말들이 침략국과의 타협을 거부하는 관료의 입에서도, 얼어 죽는 군병을 살려야 할 때 종친의 옷이나 챙기는 관료의 입에서도, 침략국의 앞잡이가 되어 항복을 강요하는 통역관의 입에서도 흘러나온다. ‘당면한 일’을 어떻게 당면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의 차이, 말들이 난무할 뿐 등장인물들의 성격적 차이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모든 등장인물들의 입과 속말을..
"하나의 다리를 건설하는 일이 만일 그곳에서 땀흘리며 일하는 이들의 의식을 풍요롭게 하지 못할 양이면, 차라리 그 다리는 만들지 않는 편이 낫다. 시민들은 예전처럼 헤엄을 쳐서 건너든가 아니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된다. 다리는 사회 전체에 절대로 데우스엑스마키나 식으로 만들어져서는 안된다. 그런 방식이 아니라 시민들의 피와 땀, 두뇌 속에서 태어나야 한다." -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서/ 서경식의 '소년의 눈물'에서 재인용 - 데우스엑스마키나 (Deus ex machina) = 소설과 희곡 영화 등 모든 서사의 종결부에서 갑작스레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인위적이며 부자연스러우며 안이한 방식을 뜻한다. 고대 그리스 고전극에서 자주 활용되던 극작술에서 유래한 말이다. 주인공이 궁지에 빠..
문: 세상에서 가장 싫은 물고기는? 답: 아이디어(魚) …썰렁하다. ^^; 기획회의를 앞두고 바닥난 곳간처럼 텅 빈 머릿속이 원망스러울 때 동료들과 이런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킬킬거렸던 적이 있다. 콘텐트 생산자 뿐 아니라 학자, 예술가, 기업의 CEO, 자영업자, 평범한 회사원에 이르기까지, 이 물고기를 잡으려는 낚시질은 생업의 가장 긴급한 문제가 아닐까. 미끄덩 빠져나가기 일쑤고 대어라고 낚아놨더니 알고 보면 잡어인데다 옆집과 똑같이 생긴 건 낚아봤자 팔아먹을 수도 없는 이 물고기를 낚는 데에도 분명 요령이 있으렷다. ‘생각의 탄생’을 쓴 저자들은 ‘무엇을’ 생각하는가에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로 초점을 옮기라고 권고한다. 같은 주제이더라도 다루는 방식,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것을 발견해낼 ..
강원도에 볼 일이 있어 차를 몰고 갔다가 정동진 맞은편 언덕배기에 커다란 공원을 발견했습니다. 하슬라 아트월드. 이름이 특이해 한번 올라가봤죠. 생각보다 상당히 큰 예술공원입니다. 산비탈의 생김새를 최대한 살려 조각공원과 미술관 체험학습장 갤러리 등을 만들었는데, 규모가 큰 데 놀랐고, 자연과 미술이 모나지 않게 어우러지게 하려는 노력에도 감탄했습니다. 하슬라는 신라시대 때 강릉의 지명이라고 하더군요. 어감이 예쁘죠? 전체를 천천히 걸어 돌아보는데 족히 1시간은 걸립니다. 돌아다니다 문득 블로그 생각이 나더군요. '블로거 마인드'가 덜 돼 디지털카메라를 안갖고 다니는 터라 (사실 제 디카는 너무 큰 구식 디카라 들고다닐 수도 없다지요~ -.-), 거의 써본 적 없는 핸펀 카메라로 몇장 찍어봤습니다. 위에..
내가 기록해둔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중 하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보는 것이다. 프랑스 생장피드보르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800km의 길. 예수의 열두제자 중 한 명인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걸었던 길. 언제부터 그 길을 마음에 두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일상을 떠나고 싶을 때마다 나는 눈을 감고, 그 길을 하염없이 걸어가는 내 모습을 몽상했다. 그러다.... 시들해졌다. 파울로 코엘료의 책을 통해 이 길이 점점 유명해졌고, 급기야 3년 전쯤인가 ‘겁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여행가 김남희씨가 오마이뉴스에 쓴 산티아고 순례기 연재를 보고, 에라, 안되겠다, 마음을 접었다. …좀 이상한 일이다. 깃발 꽂으러 가는 것도 아니면서 아무나 가는 길이면 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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